‘모든 농수산물의 생산연월일을 표기하라고?’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표시기준 고시 변경에 농수산물 생산·유통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식약처는 내년 1월부터 모든 농수산물에 ‘생산연도 또는 생산연월일’을 표기하도록 기준을 변경했다. 생선 잡은 날을 기재하고 배추 오이 상추 등 농산물 수확일도 일일이 포장지에 표기하라는 것이다.
식약처는 지난해 5월 ‘시각·후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포장은 제조연월일 표시를 생략할 수 있다’는 기존 특례 조항을 슬그머니 삭제했다.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와 협의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농어민들 경악하는 ‘엉뚱 규제’농어민과 중간 유통법인 소매 채널들은 탁상행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크기나 신선도 등 상품성에 따라 가격을 책정하고 유통해온 이들에게는 ‘황당 규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식약처가 농수산물 유통체계 전반을 뒤흔들 대형 규제를 업계 및 주무부처와의 사전 논의뿐 아니라 현장 의견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은 데 분개하고 있다.
식약처 고시에 따르면 내년 1월부터 어민들은 기존처럼 크기로 어획물을 분류하는 게 아니라 어선에서 잡힌 일자별로 일일이 나눠 담아 유통해야 한다. 생선 하나하나에 잡은 날짜를 새길 수 없기 때문이다. 어선에서 어획물을 날짜별로 구분하려면 선박 냉장창고를 개조해 구획을 나눠야 한다. 어떤 날짜 구획은 어획량이 넘쳐 잡은 생선을 다 못 담을 수도 있고 덜 잡힌 날은 구획이 텅텅 빌 수도 있다.
한 수산물 유통 관계자는 “살아 움직이는 고등어 하나하나에 낙인을 새길 수는 없으니 배에서 잡은 날짜를 분류해 담고 포장도 따로 해야 한다”며 “크기나 신선도가 아니라 날짜로 구분해 팔면 상품 가치가 뒤죽박죽돼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농업계도 비상이다. 농산물 유통 기준이 수확 날짜로 바뀔 수밖에 없어서다. 현재 가구당 인구가 2.2명에 불가한 농가에서 일일이 날짜별 분류와 포장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유통법인에서 수확일자가 섞인 농산물을 임의로 구분할 수도 없다. 한 농업법인 관계자는 “오늘 수확한 상추라도 어제 비가 왔다면 이틀 전 수확한 상추보다 신선도가 떨어진다”며 “농산물의 특성을 무시한 채 식약처가 가공품 적용 잣대로 생산연월일 규제를 강제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농어민, 유통법인과 농수산물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소매 마트 등은 “지키기도 어렵고 효용도 없는 과잉 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강용 한국농식품법인연합회장은 “식약처에 항의하니 ‘그럼 생산연월일 말고 생산연도를 표기하라’는 속편한 소리를 하는데 1주일이면 상하는 농산물에 생산연도 표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그렇지 않아도 초신선 경쟁을 하는 농산물에 공장에서 찍어낸 가공식품 규제를 들이댄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포장재 증가 … 원가 상승 불가피생산일자 표기를 위해서는 포장 없이 원물로 납품하던 농수산물에도 스티로폼·골판지 박스 포장을 하거나 스티커를 붙여야 한다. 원가 상승과 환경 파괴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식약처 말대로 생산연도를 표기하더라도 12월 31일과 1월 1일 포장은 따로 해야 하는 촌극이 발생한다. 월동채소나 일부 과일처럼 해를 넘겨도 상품성에 전혀 변화가 없는 경우 전년에 포장된 것은 재고로 인식돼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식약처는 소비자 알 권리와 안전관리를 고시 변경 이유로 들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냉동식품 규제를 논의하다가 안전관리 측면에서 전체 자연산물에 생산일자를 표기토록 했다”면서도 “앞으로 논의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좀 더 반영하겠다”고 설명했다.
식약처가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를 ‘패싱’하고 농어민의 생계와 직결된 농수산물 표시 기준 변경을 추진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농업법인연합회 관계자는 “최근 대형마트로부터 ‘이런 규제가 내년부터 시행된다는데 협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길 듣고 고지 변경을 알게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농식품부는 “소비 단계의 식품을 총괄하는 식약처가 다룰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도 “생산 단계의 급격한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농산물 생산자들의 부담에 대해 (식약처에) 설명하겠다”고 해명했다.
박한신/강진규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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