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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NGO도 혁신이 필요하다’ 월드비전이 바꿀 후원 생태계

입력: 2022- 06- 25- 오전 11:00
© Reuters.  [인터뷰] 'NGO도 혁신이 필요하다’ 월드비전이 바꿀 후원 생태계

인간의 이기심은 ‘혁신’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여겨진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는 태도가 기술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들에 비해 비정부기구(NGO)는 혁신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1월 한국 월드비전 9대 회장으로 취임한 조명환 회장은 이런 선입견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기존 기부단체의 전통을 넘어 후원의 개념을 재정의하겠다는 조명환 회장, 그가 꿈꾸는 월드비전 3.0은 어떤 모습일까. 6월의 나른한 토요일 아침, 환한 얼굴로 찾아온 조명환 회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_interviewer 박상규

지난해 2월 한국 월드비전 9대 회장으로 취임하신 후 약 16개월 만입니다. 취임 이후 그동안의 변화와 느끼신 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어느새 취임한 지 1년하고도 절반이 지났네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감사한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취임 후 세웠던 목표 중 하나는 비영리 영역에서도 빠르게 변화하는 신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많은 NGO가 좋은 취지를 갖고 있지만, 후원자 입장에선 힘들게 번 돈이 정말 잘 사용되는지 걱정이 드는 게 사실이잖아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후원금이 전달되는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신경을 써 왔습니다.

또 지난 1년은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전 세계 취약한 아이들을 어떻게 더 지원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답을 찾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2021년에는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 규모를 늘리는 것뿐 아니라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후원금 규모를 늘리는 데 집중했고, 직원들의 노력 덕분에 지난 한 해 후원금 수입이 약 36% 증가했습니다. 아무리 회장이 비전을 제시해도 직원들의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데, 길을 알려주니 금방 해내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지난 한 해는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했던 것이 좋은 성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코로나19가 감소하면서 일상 회복이 다가오고 있지만, 사회와 경제의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부 문화의 흐름과 동향에는 변화가 없었나요?

3년 가까이 이어진 팬데믹은 전 세계 취약계층, 특히 어린아이들의 삶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부모들의 수입이 감소하면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됐고, 이는 곧 조혼이나 아동노동, 아동학대 위험으로 이어졌습니다. 어른은 기아나 자연재해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약하고 힘없는 어린아이들은 버티기 어렵고요. 이런 상황에서 월드비전은 코로나19에 대응해 비대면 모금, 디지털 모금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지속해 왔습니다. 기부자들이 메타버스를 통해 후원 아동이 사는 동네를 방문하게 하는 등 디지털 상에서도 후원이 이어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큰 혼란 없이 모금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감사한 것은 코로나19 상황에도 많은 분이 취약계층을 위한 도움의 손길을 전해주고 계십니다. 오히려 코로나 시기 때 후원금 수입이 더욱 늘어났습니다. 본인들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형편이 더욱 어려운 아이들을 많이 생각하고 공감해 주셨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 할머니 한 분께서 월드비전을 찾아오셨는데, 자기가 어릴 때 월드비전에서 받은 도움을 갚고 싶다며 200만원을 가져오셨습니다. 국가에서 받는 돈을 조금씩 모아 갖고 오신 거예요. 그러면서 350만원을 낼 때까지 후원하겠다고 말씀하시고는 발걸음을 돌리셨습니다. 코로나 시대 본인도 힘든데 이렇게 돈을 모아서 오시는 게 정말 큰 감동이었고, 우리 사회가 이렇게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드비전은 비영리 기관 중에서도 앞장서서 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접목하는 등 기부 문화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소셜 액션 플랫폼 ‘베이크’가 이목을 끄는데요. 프로젝트의 동기와 현재 진행 상황이 궁금합니다.

보통 월드비전 같은 기부단체의 주된 활동은 해외 아동 후원입니다. 매달 3만원 씩 해외 아동을 후원하는 것이 대표적이고, 이외에도 해당 지역에 우물을 파거나 학교, 병원 등을 짓는 사업을 진행합니다. 이렇게 모금 단체에서 일종의 모금 상품을 만들면 후원자가 마음에 드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른 게 월드비전이 모금 상품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후원자 본인이 원하는 후원 상품을 직접 만들도록 할 순 없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의 아이디어는 한계가 있기도 하고, 그동안 해왔던 것을 이어가려는 습관이 있잖아요. 반면 MZ 세대들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가 굉장할뿐더러 기후변화 같은 사회적인 이슈에도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이런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 블록체인 기반 소셜 액션 플랫폼 ‘베이크’입니다.

베이크는 월드비전의 후원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탄소 배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베이크에 글을 올리면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모여 대화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마음이 맞으면 직접 프로젝트를 만들고 모금 캠페인을 열 수 있습니다. 특히 베이크에서의 진행되는 모든 활동 내역은 블록체인에 기록되기 때문에 함께하는 사람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정말 믿을 만한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베이크라는 플랫폼에서 자연스레 사람이 모여 나눈 의견이 소셜 액션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지난해 베이크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정부지원사업으로 선정돼 6억원 가량의 연구비를 받았습니다. 베이크 프로젝트는 국내 비영리시장에서는 최초로 사내 벤처로 조직화 됐고, 현재 법인 설립과 독립 분사를 준비 중입니다. 비영리단체가 영리회사를 만드는 특이한 사례인 거죠. 물론 월드비전 산하의 조직인만큼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목적은 아닙니다. 그동안 월드비전의 주 수입원이 후원자들의 후원이었다면, 이제는 직접 영리기업을 만들어 사업을 통해 돈을 벌고, 그 수익금이 다시 비영리기관으로 들어오게 하는 선순환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동안 비영리단체들이 생각해보지 못한 굉장히 새롭고 재미있는 실험이 될 것 같습니다

월드비전의 새로운 도전과 변화가 놀랍습니다. 더욱 활발한 활동을 위한 다른 계획들도 있으신가요?

월드비전은 저출산 고령화 이슈와 관련해 ‘유산기부’라는 새로운 후원 모델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본인 혹은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구성원의 장례비용, 유산 등을 기부하는 형태입니다. 아직 국내에서는 낯선 개념이지만 선진국에서는 이미 중요한 후원 모델 중 하나입니다. 영국은 전체 기부금의 33%가, 미국은 8%가 유산 기부라고 합니다.

대한민국도 저출산과 고령화, 1인 가구 증가라는 상황 속에서 유산기부가 새로운 후원 모델로 자리 잡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후원자 개발에 주력하고 있고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인 김앤장과도 협약을 맺는 등 유산기부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기업이나 고액후원자한테 맞춤형 후원 모델을 제공하는 것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기업이나 고액후원자가 원한다면 특정 나라, 특정 사업 등을 지정해서 지원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월드비전은 분쟁 지역 등 전 세계의 가장 취약한 지역에서 사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만큼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할 예정입니다.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정책과 제도의 역할 또한 중요합니다. 정책이나 제도적인 측면에서 보완, 마련돼야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사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기부하는 방법이 불편합니다. 소액 기부는 괜찮지만 100억, 200억 같은 고액 기부는 절차가 굉장히 복잡합니다. 선한 마음에 기부했는데 오히려 세금 폭탄을 맞게 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요.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10대국으로 발전했고 전 세계가 한류에 열광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해외에선 대한민국을 ‘돈을 많이 벌어가기만 하는 나라’로 바라봅니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기부를 편하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도 미국, 영국처럼 기부하는 문화가 확산되도록 정부가 기부 관련 규제를 많이 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부금 세액 공제 혜택이 단체마다 다른 것도 고쳐야 할 부분입니다. 현행 기부금은 법정 기부금과 지정 기부금으로 나뉘는데요. 법정 기부금의 경우 개인은 100%, 기업은 50%까지 기부금으로 인정돼 세액 공제 등의 혜택을 받습니다.

반면 NGO나 종교단체에 기부하는 지정기부금의 경우 개인은 30%, 기업은 10%만 기부금으로 인정됩니다. 정부의 복지사각지대를 메꾸고 있는 NGO, 사회복지법인 기부금에 대해서도 법정기부금에 준하는 혜택을 부여한다면 기부문화 활성화 및 민간 주도의 기부금 증가를 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비재무적인 요소로 기업을 평가하고 투자를 결정하는 ESG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비단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와 각 사회 여러 기관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요. 회장님께서는 ESG 열풍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ESG는 단순한 유행이나 사라질 이슈가 아닌, 인류의 공존을 위해서 당연히 추구해야 할 가치입니다. 이상고온이나 가뭄, 홍수 등 환경문제(E), 인권과 산업안전, 공정거래 등 사회문제(S), 투명하고 공정한 이사회 운영, 내부감시기구의 건강한 작동 등 지배구조(G)는 우리 모두의 삶과 직결된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세계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거대자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기업 입장에서도 ESG는 필수가 됐습니다.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2020년 ‘지속가능성을 투자의 최우선 순위로 삼겠다’는 연례 서한을 발표했고, 다음 해인 2021년에는 기업들에게 ‘2050년 넷제로 달성 목표에 부합하는 사업계획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등 보다 직접적으로 기업의 ESG 경영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일반 투자자들 또한 회사가 ESG에 얼마나 투자하는지를 통해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는 ESG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위해 월드비전은 작년에 ESG 사회공헌본부를 만들었습니다. ESG에 투자하고 싶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기업들에 ESG 맞춤 상품을 제공하는 거죠. 실제로 최근에는 국내에서 노스페이스를 유통하는 영원무역과 케냐에 산림을 복원하는 사업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이런 일을 하니 여기에 후원해달라고 설득했다면, 이제는 기업의 니즈에 따라 맞춤형 기부 상품을 만드는 겁니다. ESG라는 범 세계적인 패러다임 속에서 월드비전도 지금껏 해보지 않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거죠.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작년에 월드비전 한국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월드비전 3.0 시대’를 선포했습니다. 월드비전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전쟁고아와 과부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후 41년간 후원을 받아왔습니다. 이것을 월드비전 1.0으로 정의했습니다. 올림픽이 끝나고 1991년이 되면서 한국 월드비전은 도움을 받는 곳에서 도움을 주는 곳으로 전환됩니다. 이것이 월드비전 2.0입니다.

한국에서 시작한 월드비전은 현재 전 세계 100여 군데에 사무소를 두며 유엔 다음으로 가장 큰 민간국제기구로 성장했습니다. 이제 월드비전은 전통적인 모금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지난 30년 동안 후원자가 우리한테 맞춰 후원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후원자에 맞춰 후원자 맞춤형 모금 상품을 만들 것입니다. 월드비전이 블록체인을 도입하고, 베이커라는 새로운 벤처를 창업하고, ESG 사회공헌본부를 만들어 새로운 사회 흐름에 대응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기존 기부 단체와 후원자의 관계 방식을 재정의하는 패러다임 시프트를 통해 새로운 월드비전으로 태어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바라보는 월드비전 3.0입니다.

본 콘텐츠는 7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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