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늘이지?”
삼성전자가 24일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을 본 재계 관계자들은 예외없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음주 범정부 차원에서 발표될 시스템 반도체 육성 종합 대책에 삼성전자의 중장기 투자 및 고용책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두 차례나 강조한 정부의 핵심 역점사업이다. 문 대통령이 정책 발표 때 현장을 직접 찾을 것으로 예상돼 정부 정책이 나오기 전 기업이 “김을 미리 빼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정부는 이날 삼성전자의 발표 내용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주요 정부 부처의 반도체산업 관련 실무자들은 이날 오전 삼성의 발표 사실 여부 및 내용을 확인하느라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 이런 상황은 지난해 삼성전자가 180조원 규모 중장기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할 때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있다. 당시는 문 대통령이 아니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 삼성전자는 발표 내용을 기재부 측 실무자들과 사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청와대가 삼성 측에 투자를 구걸했다는 논란이 벌어지자 삼성전자는 김 부총리의 공장 방문 이틀 후로 대책 발표를 미루기도 했다. 삼성전자 측은 “회사의 중장기 경영 전략과 비전은 회사 자체 일정에 따라 대내외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며 “정부의 정책 발표 일정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지난주부터 발표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날 정부 정책 발표 전 삼성의 공개가 2017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멀어진 재계와 청와대의 거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일부 재벌 총수는 회사 현안 해결을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개별 면담했다는 이유로 실형까지 살았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국정농단 재판과 관련해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상고심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청와대에 코드를 맞췄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순실 트라우마 이후 대기업 경영진이 대부분 살아있는 권력과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거리를 두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며 “삼성도 예외가 아니다”고 말했다.
좌동욱/조재길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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