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의 미래 사업·재무 상태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 가운데 통합신용도가 있다. 그룹에 속한 주력 계열사의 신용등급과 비중을 가중 평균한 개념이다. 지주사의 신용등급을 산출하거나 계열사에 대한 그룹의 유사시 지원 가능성을 평가하는 기준점 역할을 한다.
최근 한국기업평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그룹별 통합신용도에 변동 모멘텀이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그룹의 통합신용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통합신용도의 안정성은 두 축에서 살필 수 있다. 첫 째는 위치다. 통합신용도는 같은 신용등급이라 하더라도 상·하단이 있다. 가중 평균 된 신용도가 신용등급의 상·하단 밴드 어느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안정성이 달라진다.
두번 째는 주력 계열사의 등급전망이다. 밴드의 위치가 상·하단에 근접해 있더라도 주력 계열사의 신용등급 변화 가능성이 높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통합신용도의 변동성이 크지 않다. 반대로 밴드의 중앙에 있더라도 주력 계열사의 등급전망이 부정적이라면 통합신용도의 안정성은 떨어진다.
이런 기준으로 봤을 때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국내 5대 그룹 중 통합신용도의 안정성이 가장 높은 그룹은 SK로 분석됐다. 그 뒤를 이어 삼성과 현대차의 통합신용도 안정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롯데와 LG의 통합신용도는 위태로운 것으로 분석됐다.
롯데는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AA)과 호텔롯데(AA)의 등급전망이 부정적이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유례없는 실적 악화를 겪고 있다. 증권사 한 임원은 "롯데쇼핑은 유통업의 구조 전환 이슈에 경쟁 업체에 비해 대응 속도가 늦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어 실적 부진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LG는 주력 계열사 중 등급전망이 부정적인 업체는 없다. 하지만 LG디스플레이(A+)가 신용등급 하향 요인 일부를 충족하고 있다. 지난 2분기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탓에 올 하반기 실적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부문의 성과가 부진하면 결국 신용등급이 강등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주력은 아니지만 LG하우시스(AA-)의 등급전망이 부정적이다. 다행스럽게도 올 들어 실적이 반등한 상태라 등급전망은 조정될 여지가 있다.
이에 비해 삼성은 통합신용도 측면에선 느긋한 편이다. 부정적 등급전망 '꼬리표'를 달고 있는 호텔신라(AA)와 삼성중공업(A3+)에 신용도 이슈가 있긴 하지만 그룹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 삼성에선 삼성전자의 비중이 절대적인데, 최고 수준의 사업경쟁력과 재무안정성 덕분에 다른 계열사의 신용도 변화까지 감내 가능한 수준이다.
현대차는 코로나19가 더 장기화하면 외형이 축소되고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어 전문가들이 올 하반기 이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SK는 배터리 부문의 투자와 배당 부담 탓에 SK이노베이션(AA+)과 SK이엔에스(AA+)의 신용등급 변동 가능성이 있지만 통합신용도가 동일 신용등급 밴드의 상단에 위치하고 있어 연계 변화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장 참여자들도 그룹의 통합신용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트리거(방아쇠)' 업체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예컨대 롯데의 경우 롯데쇼핑과 호텔롯데가, LG의 경우 LG디스플레이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면 그룹의 통합신용도가 동반해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그룹의 통합신용도가 바뀌면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통상 계열사들은 유사시 그룹의 지원 가능성을 반영해 자체 신용등급 보다 한 단계 정도 높은 신용등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주욱 한국기업평가 전문위원은 "개별 업체의 실적과 신용도의 방향성이 다르지 않은 것처럼 그룹 전체 합산 실적과 통합신용도의 방향성도 결국 같은 추세를 띠게 된다"며 "연내 시장의 우려가 큰 해당 업체들의 신용등급 적정성을 검토해 시장에 공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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