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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논설실] 동학개미운동과 '존버' 투자

입력: 2020- 03- 24- 오후 06:40
© Reuters.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세계 경기 침체 우려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증시가 폭락한 23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① 던지고 나가는 외국인, 받아내는 개미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으로 지난주 금요일 모처럼 폭발적 반등세를 보였던 증시가 어제 다시 큰폭으로 주저 앉고 말았다. 주식투자자들의 한숨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잘 알려진대로 이번 코로나 폭락장에서 외국인들이 내던진 주식의 대부분을 개미들이 사들였다. 이달 들어 19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9조5105억원어치 주식을 팔았는데 개인은 같은 기간 8조6277억원어치를 사들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대장주 삼성전자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우선주 보통주를 합해 개인들은 이달들어 4조5113억원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사들였다. 전체 개인 주식 매수금액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반면 같은 기간 외국인은 삼성전자 주식 4조7669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역시 외국인 총 매도금액의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 요즘 유행하는 '동학개미운동'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② 개미들은 왜 떨어지는 칼날을 잡을까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말라는 것은 유명한 증시 격언이다. 주가는 한번 하락세로 돌아서면 아무도 바닥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주가 급락시에는 함부로 매수에 나서지 말라는 얘기다. "지하5층 밑에 10층이 더 있더라"와 같은 이야기가 증권가에서 회자되는 것도 그래서다.

헌데 지금 개미들은 이런 격언과 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왜 그럴까. 우선은 학습효과 때문이다. 과거 외환위기 때,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지금 못지 않게 주가가 폭락했다. 1996년 6월 913.25였던 코스피는 외환위기를 거치며 1998년 6월 280.00으로 69.3% 하락했고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코스피는 2007년 10월 2,064.85에서 2008년 10월 938.75까지 54.5% 떨어졌다. 당시에는 모두가 공포에 휩쓸려 쉽사리 '매수'에 나서지 못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 때가 바로 매수 적기였다는 지적이 훗날 나왔다. 예를들어 삼성전자의 경우 1998년 9월23일 3만1200원(액면분할전)까지 떨어졌다. 지금 가격으로는 624원에 해당하는 말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당시 삼성전자 주식을 사서 지난 1월20일 사상 최고가( 6만2800원)에 팔았다면 100배가 넘는 대박을 낼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개미들이 폭락장에서 연일 매수에 나서는 또 다른 이유는 대박심리 때문이다. 집값 급등, 가상화폐 투자 실패 등에서 좌절한 젊은층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주식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는 분석도 많다. 실제 최근 신규 개설되는 증권 계좌에서 20,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③ 왜 하필 삼성전자인가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개인들이 최근 사들인 주식의 절반 이상이 삼성전자다. 이처럼 삼성전자에 몰리는 이유는 우선 한국을 대표하는 대장주라는 데 있다. 한국이 망하지 않는 한, 삼성전자도 망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언젠가 삼성전자 주가는 반드시 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개미들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과거 역대 폭락장 이후 1~2년 사이에 주가가 2배 이상 오르는 모습을 보여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70만원선을 오가던 삼성전자 주가는 그해 10월 40만 7500원까지 곤두박질쳤지만 1년 뒤인 2009년 10월 80만원선을 회복했고 2011년 1월에는 100만원을 돌파했다.

2011년 9월 유럽 재정위기 때도 그해 연초 대비 30% 이상 내린 72만원대까지 떨어졌지만 1년 뒤인 2012년 9월 136만9000원, 2012년 말에는 150만원대도 넘어섰다. 2015년 메르스 발병전 150만원을 넘던 주가는 8월 메르스 사태로 106만7000원까지 떨어졌지만 2017년 8월에는 238만원을 넘어서며 2년 사이에 두배 넘게 오르기도했다.

삼성전자에 대한 로망도 개미들을 이 주식 매수에 몰리게 만드는 이유중 하나다. 2018년 5월 50대1의 액면 분할 이전 삼성전자 주가는 주당 250만원을 넘나들었고 최고가는 287만6000원이었다. 일반 개미들로서는 사고 싶어도 1주 사기도 버거운 금액이었다. 그런 황제주 삼성전자가 액면 분할을 하면서 주당 가격이 뚝 떨어지자 한결 부담이 가벼워진 개미들이 그래도 '믿고 보는' 주식 삼성전자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④ 삼성전자 주가 언제 쯤 날아갈까

삼성전자는 코스피시장 시가총액의 30~35%선을 오락가락 한다. 삼성전자의 움직임이 코스피 전체 움직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그럼 개미들이 사들인 삼성전자는 언제쯤 훨훨 날까.

물론 누구도 모른다. 한가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증시의 큰손이 이 주식을 본격적으로 사들이는 시점부터라는 정도다. 한국 증시의 가장 큰 손은 물론 외국인이다. 코스피 시총에서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거의 40%에 육박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외국인은 지난 2월초부터 어제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모두 14조501억원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개인은 14조6448억원어치를 샀다. 외국인은 이 기간 36거래일 중 9일을 제외한 27일 동안 순매도를 기록했다. 외국인이 아직도 지속적으로 주식을 팔고 개인은 이 물량을 거의 다 받아내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시장 구조에서는 당분간 주가가 오르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개인들이 탄탄하게 매수를 받치고 있다보니 삼성전자처럼 개인들이 선호하는 종목의 주가는 상대적으로 하방 경직성이 있기는 하지만 개인의 매수세로 추세 상승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⑤ 개미는 최고의 인간 지표?

개미가 사면 주가는 떨어지고 개미가 팔면 주가는 오른다? 이번 코로나 폭락장이 본격화된 지난 2월말부터 3월을 거치면서 주변에서 유독 "지금이 기회다"라는 얘기를 하는 게 많이 들렸다. 개중엔 있는 돈, 없는 돈 다 동원하고 마이너스 통장까지 최대한 땡겨 삼성전자에 몰빵하고 6개월간 버티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최근 동학개미운동에 동참한 개인들 중 상당 수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과거를 돌아보면 시장은 개인의 매매동향과 반대로 움직여왔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시장을 움직이는 힘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사실 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개인들이 주식을 살 때는 시장가로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스로 지금이 저가매수 기회라고 생각을 해도 단 한틱이라도 싸게 주식을 사고 싶어 한다. 매수하기로 맘먹은 날에도 호가창을 보며 나름 장중 저점이라고 생각한 가격에 사고 싶어 하는 게 평범한 개미의 심리다. 물론 매수 물량도 많지 않다. 이런 개미들이 수천,수만이 모이면 큰 힘이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흩어져 제각각이다. 현재가에서 몇틱이라도 아래 주문 걸어놓고 체결되자마자 잔고 조회에서 '빨간불'을 보고 싶어하는 게 개미들이다. 이런 식의 매매 방식은 그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주가를 끌어올릴 수 없다.

외국인들의 매매 패턴은 이와는 딴판이다. 나름의 기준으로 특정 주식을 사들여야겠다는 의사결정 내리면 몇틱에 연연하지 않고 프로그램에 의해 지속적으로 며칠이라도 계속 주식을 사들인다. 매매법은 주체마다 다르겠지만 시장개 매수도 마다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적극적이고 추세를 형성하는 매수가 며칠이고 지속돼야 주가에 이른바 추세가 생기는 것이다.

개인들은 주가가 좀 오르면 너무 올랐다고 생각하고 좀 내리면 너무 내렸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본능적 생각은 결국 추세와 역행하는 매매를 하게 만든다. 반면 외국인 같은 큰 손들은 오를 때는 더 사고 내릴 때는 더 판다. 이른바 추세매매다. 추세를 따를 뿐 아니라 스스로 추세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매매 패턴이 불가피하게 개인과 외국인간의 매매 패턴이 반대가 되게 만든다.

⑥ '존버'로 승리하려면

개인들마다 매수단가가 다른 만큼 손실 규모도 다를테고 약간 수익이 난 투자자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시장에 진입한 대다수 개미들은 지금 '버티기'에 들어갔다고 보인다.

언제까지 버텨야 할까. 물론 매입단가를 넘어 수익이 나는 시점까지는 버텨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언제냐는 걸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짧게는 몇개월 내지 1~2년이 될 수도 있지만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이번 코로나 위기는 과거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그 충격이 더 크고 기간도 길 것이라고 전망한다. 외환이나 금융처럼 경제의 특정 부분이 아닌, 실물과 금융할 것 없이 전방위적이고 복합적으로 번지는 위기라는 점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본격적으로 '사자'로 돌아서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결국 지속적인 버티기가 필요하다는 얘긴데 그러기 위해서 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다. 지금 삼성전자에 들어간 돈이 몇년간 그대로 묶여 있어도 내 일상에 지장이 거의 없을 정도라야 이런 마음의 평화가 가능하다. 간밤 미국 시장 동향이 신경쓰여서 잠을 설쳐대고 아침에 증시 개장을 앞두고 초조한 맘에 시황판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못배기는 지경이라면 '존버'는 불가능하다. 이런 심리 상태로는 돈을 버는 것은 둘째치고 건강마저 해치게 된다.

무리하게 신용을 끌어 땡겼거나, 마이너스 통장을 풀로 동원한 개미들은 그런 점에서 '존버'에서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빚을 내서 들어간 부분은 좀 손실이 나더라도 손절하고 남은 여유자금 정도로만 버티기에 들어가는 게 아쉽지만 현실적인 대안이다.

⑦ 들고 있는 삼성전자, 그냥 연금이라 생각해라

개미 투자자중 상당 수가 의도치 않은 장기투자를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대로다. 문제는 이런 장기투자자가 주식을 파는 시점이다. 최악의 경우는 몇년을 버티다가 할 수 없이 돈이 필요해 엄청난 손실에도 불가피하게 손절하는 경우다. 두번째로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오랜 시간 인고의 세월을 보낸 결과 드디어 매수가격 근처까지 주가가 올라올 경우 '본전' 근처에서 그만 주식을 처분하고 만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다수 개인들은 조금 주가가 오르면 너무 올랐다고 생각하기 쉽다. 오랜 기간 갖고 있으면서 평가손으로 마음을 조리게 했던 주식이 드디어 손실을 벗어나 본전 내지는 살짝 '플러스'로 돌아서면 그간의 마음 고생이 지긋지긋해 그만 매입가 근처에서 팔고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른바 '본전 심리'가 작동한 케이스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내가 팔고 나면 주가는 그 때부터 날아가 버린다.

삼성전자는 사들인 개인들은 각자 투자 이유가 조금씩 다를 것이다. 일부는 며칠, 혹은 몇달을 겨냥해 단기 수익이 나면 털고 나가려고 할 것이고 일부는 좀 더 긴 시간을 갖고 수익을 추구하려들 것이다. 많은 이들의 생각처럼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삼성전자 역시 망하지 않는다는 마인드라면 삼성전자의 단기 가격 움직임은 잊는 게 좋을 듯도 하다.

주식에 투자했다기 보다는 내가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은 그냥 노후 연금이라고 생각하고 묻어버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국민연금 공단에서는 주기적으로 가입자에게 안내 메일을 보낸다. 하지만 가입자중 자신이 지금까지 낸 연금보험료가 얼마이고 향후 받게될 금액이 어느 정도가 될 지, 거의 매일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내가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에 대해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개미가 있다면 그는 거의 분명히 주식투자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빚진 돈으로 투자하지 않아야 하고 여유자금이어야 한다. 하지만 너무 소액이라면 관심을 끊기에는 좋지만 제대로된 연금 역할을 못한다는 문제가 또 있다. 주식투자가 참 어려운 건 그래서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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