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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올 실적 추락 이 정도일 줄이야…"

입력: 2019- 03- 14- 오전 02:41
기업들

SK하이닉스에서 기획, 재무, 마케팅, 영업 등을 담당하는 핵심 임원들은 요즘 2주마다 경기 이천 본사 회의실에 모인다. 올 들어 가동한 ‘위기 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에 참석해 비용 절감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서다. 이 회사 관계자는 “반도체 가격 급락 여파로 1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4분기(4조4000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며 “회사 전반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 업황이 꺾이면서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가는 기업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외 경기 침체 등으로 수출 및 내수 위축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1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매출 상위 20개 상장사의 올 1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를 조사한 결과 삼성전자 SK(주) 포스코 등 10개사의 실적이 작년 1분기보다 악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2017년 1분기와 비교하면 전체의 80%인 16개사의 영업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증권사들은 삼성전자의 올 1분기 영업이익(8조4120억원)이 작년 1분기(15조6422억원)의 반토막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 회사는 주요 부서에 “5~10% 비용 절감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중국 사업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는 등 ‘비상체제’로 전환했다. 포스코(철강) SK이노베이션(석유화학) 현대중공업(조선) 등 업종 대표기업들도 실적 악화에 따른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호재는 없고 악재만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視界 제로…벼랑끝에 선 기업들 "올 경영환경 미세먼지보다 답답"

“중국과 유럽 경기는 이미 꺾였고, 미국과 일본 경제도 심상치 않습니다. 물건을 내다 팔 시장은 쪼그라드는데 인건비, 전기료 등 비용 부담은 커지니…. 올해 경영환경은 미세먼지보다 더 답답하고 앞이 안 보입니다.”

기업들

10대 그룹 중 한 곳의 주요 계열사를 이끄는 최고경영자(CEO)의 하소연이다. 그는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으로 보고 작년 말 사업계획을 짰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훨씬 더 나쁘다”고 했다. 올 들어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조선 등 국내 주력산업이 일제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언제 회복될지 가늠하기도 힘들다. 한국 경제가 ‘기업 실적 악화→투자 위축→고용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덫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줄줄이 추락하는 주력 기업 실적

1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전자업계 ‘빅4 상장사’로 꼽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LG디스플레이의 올 1분기 영업이익(증권사 전망치 평균인 컨센서스 기준)이 작년 1분기보다 큰 폭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은 ‘반토막’ 수준으로 급감하고 LG디스플레이는 적자폭이 확대될 것으로 증권사들은 내다봤다. LG전자의 영업이익은 1조1078억원에서 7795억원으로 29.6% 쪼그라들 전망이다. 전자업계 고위관계자는 “작년 하반기부터 하락세로 돌아선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지금 이 순간에도 떨어지고 있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분기 실적은 증권사들의 예측치보다 더 나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자동차와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주력 3사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보다 20%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기저 효과에 따른 착시일 뿐 실제 경영 상태가 좋아진 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17년 1분기와 비교하면 이들 3사의 1분기 영업이익은 30~40% 줄어들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 1~2월 현대·기아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1.8% 줄어든 103만6083대에 그쳤다”며 “연말 기준으로 현대·기아차의 잉여 생산능력이 200만 대에 달할 전망인 만큼 중국에 이어 추가 구조조정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철강 업체들의 1분기 영업이익은 수요 위축과 공급 과잉이 맞물려 전년 동기에 비해 10~20% 빠질 것으로 전망됐다. 정부가 추진 중인 ‘산업용 심야 전기요금 10% 인상안’이 확정되면 수익성은 더 악화된다. 현대제철이 2017년에 쓴 전기료가 1조1300억원이었던 만큼 추가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양대 축인 SK이노베이션(7116억원→5068억원)과 LG화학(6508억원→4577억원)도 정제마진 감소 여파로 1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보다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호재는 안 보이고 온통 악재만…”

기업들의 실적 악화는 비상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 4대 그룹 주요 계열사마다 비용 절감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보릿고개’를 넘길 실탄을 마련하기 위해 비핵심 자산 매각에 나선 기업도 줄을 잇고 있다. LG전자는 경기도 안양연구소를 매물로 내놨다. SK인천석유화학은 최근 인천 석남동 부동산을 655억원에 매각했다. 작년부터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간 LG디스플레이는 폴란드 법인이 보유한 701억원(장부가) 규모의 부동산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중국과 유럽에 이어 미국 일본 경기마저 흔들리는 모습”이라며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 경제구조상 글로벌 경기가 침체 국면에 들어가면 버텨낼 기업이 거의 없다”고 우려했다.

올 들어 국내 대표 기업들의 실적이 일제히 나빠진 현상을 ‘산업의 저출산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신산업 및 융복합 산업에 국내 대기업들이 제때 뛰어들었거나, 관련 벤처기업이 대거 배출됐다면 글로벌 경기가 악화돼도 지금처럼 전 산업이 휘둘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미국 대표 기업이 최근 10~20년 사이 제너럴일렉트릭(GE) 엑슨모빌 등 굴뚝기업에서 아마존 우버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으로 바뀌었지만 한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융복합 관련 규제를 풀어 대기업들이 미래산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유도하고 우버, 구글 같은 글로벌 벤처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상헌/고재연/송종현/ 김보형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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