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강화 배경엔 '반기업 정서'
재계에 따르면 기업을 대상으로 한 규제 입법 배경에는 반기업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 산업재해에 대한 사업주 책임을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대표 사례다. 해당 법안은 근로자 사망을 비롯한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경영책임자 등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리는 게 골자다. 원인이 복합적인 산재 사고의 책임을 경영책임자 등에게만 전가한다는 점을 감안,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한다는 비판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이 꾸준히 중대재해법 반대 의견을 냈으나 규제는 오히려 강화됐다. 50인 이상 사업장이었던 규제 대상이 올해 초부터 5~49인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사고 원인을 기업 잘못으로만 보는 시각이 주효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중대재해법 확대에 대해 "처벌 중심으로 법이 운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경영 활동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경제인협회 관계자도 "사업장 폐업 등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기업 부담을 키우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역시 반기업 정서를 기반으로 한다. 집단소송제는 특정 사안에 대해 한 사람이 승소했을 경우 다른 피해자들은 별도 소송 없이 같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가해자 행위가 반사회적일 경우 손해액보다 큰 규모로 보상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재계는 ▲보상을 위한 무리한 기획소송 ▲중소기업의 소송 비용 부담 ▲기존 법과의 충돌 등의 이유로 반대한다.
반기업 정서는 규제 완화를 가로막기도 한다. 기업 부담을 덜 수 있는 세제 개혁 등이 언급될 때마다 '부자 감세'라는 프레임이 논의를 방해한다는 게 재계 관계자 설명이다. 상속세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재계 요구가 있으나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특정 재벌을 위한 부자 감세라는 명분을 내세워 반대하고 있다. 한국의 상속세 부담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라는 점과 상속세 완화 시 가업 상속을 통해 중소·중견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등의 장점은 반기업 정서에 휩쓸려 언급되지 않는 경우가 잦다.
반기업 정서 해소 움직임… "정치적 이유 걷어내야"
경제단체 차원의 반기업 정서 해소 움직임도 엿보인다. 대한상의·한경협 등 경제 5단체는 지난해 말 '글로벌 스탠다드 규제개선 공동 건의집'을 발간하며 "우리 경제가 반기업 정서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해당 건의집은 ▲기업지배구조 및 자본시장 ▲독점 및 공정거래제도 ▲기업 세제 등에 대해 글로벌 현황을 비교하고 제도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경제 5단체는 건의집을 제도 개선방안 마련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 각 부처와 국회에 전달하기로 했다.
기업 차원에서는 일자리 창출이 반기업 정서를 해소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경협이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9월 발표한 '대기업의 국가 경제 기여도 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이 바라는 대기업 역할 1순위는 일자리 창출(24.2%)로 조사됐다. 수출투자 확대(16.0%), 사회적 책임 강화(16.0%), 근로자 임금·복지 향상(15.7%) 등이 뒤를 이었다. 한경협은 "취업난이 지속하고 구직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다 보니 대기업 일자리에 대한 국민적 수요는 점점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홍기용 인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재벌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반기업 정서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며 "'부자 감세' 등 정치적 프레임을 이유로 기업들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 국가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외국 기업인의 진출 사례를 보면 되는데 한국은 반도체 등 최첨단 산업에 대해서도 외국 기업 진출이 거의 전무하다"며 "반기업 정서를 해소해 기업 규모와 관계 없이 연구·개발(R&D) 혜택 등의 지원과 노동 유연화 등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